1. ‘완벽한 채식은 어렵지만, 가까운 채소는 할 수 있겠다’는 다짐
처음 채식을 결심했던 건 윤리적인 이유 때문도, 건강 때문도 아니었어요.
그저 어느 날, 저녁밥상에 올라온 수입산 브로콜리를 보며
‘이 채소가 이 먼 길을 왜 굳이 건너왔을까?’라는 질문이 들었죠.
그 순간 무엇을 먹느냐보다, 어떻게 여기까지 왔느냐가 더 중요하게 느껴졌습니다.
비건 식단을 100% 실천하는 건 제게 무리였습니다.
고기를 완전히 끊기는 어려웠고, 외식도 많았으니까요.
하지만 지역에서 자란 채소를 중심으로 식사를 재편하는 건 가능한 일이었어요.
마침 동네 로컬푸드 매장에서 계절 채소를 파는 걸 발견하면서
비건이 아니더라도 ‘채식보다 가까운 채소’부터 실천해보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하니
비건이라는 단어가 갑자기 나와 멀지 않은 곳으로 다가왔고,
그렇게 제 일상의 식사가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어요.
2. ‘제철’이 주는 식사의 리듬 – 로컬푸드가 알려준 밥상의 계절감
로컬푸드로 식단을 바꾸기 시작하면서
가장 먼저 바뀐 건 식사의 리듬이 계절을 따라간다는 점이었습니다.
예전엔 냉장고에 늘 있는 당근, 브로콜리, 토마토로
무의식적으로 비슷한 메뉴를 돌려가며 먹었는데,
지금은 계절마다 달라지는 채소를 중심으로 요리를 구성해요.
봄에는 냉이와 달래, 여름엔 애호박과 가지,
가을엔 무와 배추, 겨울엔 근대와 시래기.
이런 제철 채소는 로컬푸드 매장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고,
조금만 손질해도 신선해서 조리법도 간단해지죠.
이 리듬을 타기 시작하니
마트에서 장을 보는 시간이 줄고, 냉장고에 오래 남는 식재료도 없어졌습니다.
음식 쓰레기가 줄고, 뭘 먹을지 고민하는 시간도 덜어졌어요.
무엇보다, 식사라는 행위가 ‘오늘 이 계절을 어떻게 먹을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바뀌는 게 신기했죠.
3. ‘누가 키운 채소인가’를 알게 된 후의 변화 – 관계 기반의 식사
마트에서는 식재료가 어디서 왔는지 따져본 적이 거의 없었습니다.
하지만 로컬푸드 장터에서는
“이 상추는 김해에서 오늘 따오셨어요”,
“고구마는 ○○ 농부님이 저온 숙성해서 보내주셨어요”라는 설명을 듣게 되죠.
그 순간, 채소에 이름이 생기고 얼굴이 붙기 시작합니다.
이름을 알게 된 채소는 이상하게 더 소중하게 느껴지고, 더 신중하게 조리하게 됩니다.
먹다가 남기게 되면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고,
“다음 주엔 이걸로 무슨 요리를 해볼까?” 같은 상상도 따라오죠.
이런 경험은 단순히 채소를 고르는 기준을 넘어서
식사 자체에 대한 태도를 바꾸게 했습니다.
식탁이 혼자만의 시간이 아니라
농부와 땅, 계절과 연결되는 자리가 된 거죠.
완전한 비건은 아니어도, 이 식탁엔 분명 ‘가까운 채소’가 중심에 놓이게 됐습니다.
4. 비건의 또 다른 이름, ‘지역을 먹는 삶’이라는 발견
이제 제 식사는 완벽한 채식은 아니지만,
확실히 ‘지역을 먹는 식단’이 되었습니다.
가까운 농장에서 온 채소, 그날 수확한 것,
과하게 포장되지 않은 형태 그대로를 요리하고 나눠 먹는 일.
그게 단지 건강한 식단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삶의 방식이라는 걸 실감하고 있어요.
이런 식생활은 비건을 어렵게 느끼는 많은 사람들에게
한 가지 현실적인 대안을 제시해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육류를 끊어야 한다'는 부담이 아니라
‘당장 오늘, 가까운 채소 하나를 고르자’는 실천이라면
누구나 조금씩 할 수 있는 일이니까요.
지금도 저는 매주 로컬푸드 꾸러미를 받고,
그 안에서 다음 주 식사의 영감을 얻습니다.
그 채소들이 비건이라는 단어보다 훨씬 더 살가운 언어로 다가왔고,
그걸 매일 먹는 식탁은 생각보다 훨씬 따뜻하고 든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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