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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컬푸드

월세 대신 땅을 빌린다: 도시 청년의 로컬 농장 도전기

by recode-1 2025. 4. 27.

1. 왜 땅을 빌리기로 했을까? – 청년 로컬 농업 도전 계기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한 지 5년,
매달 빠져나가는 월세를 보면서 한 번쯤은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이 돈이면 뭔가를 소유하거나 키울 수 있지 않을까?"
그러던 중 우연히 알게 된 게 바로 ‘도시 청년 농업 임대 프로그램’이었어요.
지역 소멸 위기를 겪는 농촌에서
유휴 농지를 청년들에게 저렴하게 임대해주는 정책이 있었던 거죠.

처음엔 반신반의했습니다.
농사라니, 농부라니, 내가 과연 할 수 있을까?
하지만 직접 지역 설명회를 찾아가 보고,
농지를 둘러보면서 생각이 달라졌어요.
땅은 생각보다 우리 곁에 가까이 있었고,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거창한 시작이 아니어도 괜찮았거든요.

결국 저는 서울 원룸 계약이 끝나던 그해 봄,
한 달 월세 비용으로 강원도 외곽에 200평 남짓한 밭을 빌리기로 결심했습니다.

 

2. 농촌에선 땅만 빌리는 게 아니다 – 지역과의 연결성

처음 지역에 발을 들였을 때
가장 먼저 느낀 건 '땅만 얻는 게 아니라 사람과 관계도 얻는다'는 거였어요.
농지를 빌리려면 그냥 계약서만 쓰는 게 아니라,
주변 마을 주민들의 동의를 얻고,
주민 협의회에 얼굴도 비춰야 했습니다.

처음엔 낯설고 부담스러웠어요.
하지만 조금씩 밭을 갈고, 씨앗을 심는 과정을 함께하면서
마을 어르신들이 하나둘 말을 걸어주기 시작했습니다.
"올해 고추는 일찍 심어야 혀."
"물은 새벽에 뿌리는 게 좋다."

이런 소소한 조언이 쌓이면서
저는 점점 ‘혼자 땅을 빌린 게 아니라, 작은 마을 한 귀퉁이에 살게 된 것’처럼 느껴졌어요.
로컬 농업은 단순히 땅을 경작하는 일이 아니라,
그 지역의 시간과 리듬을 배우는 일이었습니다.

 

3. 처음 심은 작물, 그리고 현실적인 실패들 – 초보 농사의 시행착오

당연히 쉽지는 않았습니다.
처음 심은 건 상추, 고추, 토마토 같은 기초 작물이었어요.
가장 만만해 보였던 상추조차
비 맞고 벌레 먹고 갑자기 시들어버리는 일이 다반사였습니다.

특히 도시에서 배운 정보만 믿고
물주기나 거름 타이밍을 잘못 잡으면서
초기에 심은 작물의 절반은 제대로 수확도 못 했어요.
그때 가장 뼈저리게 느낀 건
"농사는 책으로 배우는 게 아니라 몸으로 배우는 거구나"라는 사실이었습니다.

다행히 실패가 전부는 아니었어요.
마을 어르신들이 틈틈이 도와주셨고,
동네 로컬푸드 직매장 담당자분께
"지금 이 계절엔 열무가 제일 잘 나가요"라는 조언을 듣고
두 번째 시즌부터는 ‘짧은 수확 주기 채소’를 집중적으로 키우기 시작했습니다.

작은 실패를 겪고 나니
농사는 기다림의 기술이 아니라 관찰과 조정의 기술이라는 걸 조금은 알 것 같았어요.

월세 대신 땅을 빌린다: 도시 청년의 로컬 농장 도전기

4. 작은 수확이 가져온 예상 밖의 변화 – 로컬 경제와 연결되다

처음 키운 열무 30단, 상추 50봉지.
양으로 보면 정말 소박한 생산량이었지만,
그걸 동네 직매장에 납품하면서
생각보다 큰 보람을 느꼈습니다.

“이거 어디서 키운 거예요?”
“젊은 사람이 농사도 짓네.”
매장에 납품할 때마다 듣는 이런 말들이
단순한 판매를 넘어 ‘지역 안에서 나를 소개하는 일’처럼 느껴졌어요.

게다가 로컬푸드 매장은 대형 마트처럼 수수료가 크지 않고,
생산자 소개 카드도 따로 마련해줘서
내 이름이 적힌 열무 단이 누군가의 밥상에 올라간다는 실감
이 생겼습니다.

생산과 소비가 가까워질 때
음식이 다시 ‘사람의 얼굴을 가진 물건’이 된다는 것.
그건 도시에서 소비자로만 살아온 저에겐
새로운 감정이었습니다.

 

5. 땅을 빌린 청년, 삶을 다시 빌리다 – 로컬 농업의 미래 가능성

어느덧 첫 수확을 끝낸 지 반년이 지났습니다.
지금은 당근, 무, 브로콜리 같은 겨울 채소를 준비 중이에요.
밭에서 직접 일하며 배운 건
삶은 결국 ‘기다림과 손질’의 연속이라는 사실이었어요.

물론 농사로 당장 큰 돈을 벌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월세 대신 땅을 빌린 선택은
돈 이상의 경험, 관계, 자립심을 제 삶에 채워주었습니다.

그리고 이 경험은 단순히 개인의 만족에 그치지 않고
지역 경제에 작은 활력과 새로운 가능성을 심는 일이기도 하다는 걸 알게 됐어요.

로컬푸드 무브먼트는 거창한 운동이 아닙니다.
한 사람의 작은 실천이 모여,
지역과 도시, 그리고 세상을 조금 더 건강하게 연결하는 흐름
입니다.
그리고 그 시작은 어쩌면,
‘월세 대신 땅을 빌린다’는 아주 작은 결심에서 가능할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