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시작은 ‘거리’에 대한 질문이었다 – 푸드 마일리지를 줄여야 하는 이유
처음 ‘제로에미션 로컬푸드 유통’을 실험해보겠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땐,
솔직히 별 기대가 없었습니다.
마트에 넘쳐나는 수입 식재료들,
하루에도 몇 번씩 드나드는 택배 트럭들.
이 현실에서 ‘탄소 없는 유통’이라니, 너무 먼 얘기 같았죠.
그런데 어느 날,
집 앞 로컬푸드 직매장에서 우연히 본
“이 무는 밭에서 8km 떨어진 이곳까지 자전거로 왔습니다”는 문구가
생각보다 깊게 와닿았어요.
단순한 무 하나에 ‘이동 거리’가 표시되어 있다는 사실이,
내가 그동안 아무렇지 않게 지나쳤던 ‘거리와 에너지’를 떠올리게 했죠.
그날 이후로 푸드 마일리지에 대해 조금씩 찾아보기 시작했어요.
한 알의 체리가 식탁에 오기까지
1만 킬로미터가 넘는 거리를 날아오는 일이 흔하고,
신선도를 위해 쓰이는 냉장 유통 시스템이
얼마나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하는지도 알게 됐습니다.
그래서 한 가지 의문이 생겼죠.
그럼 가까운 거리의 채소는,
정말 더 적은 탄소로 우리에게 올 수 있을까?
2. 전기차, 자전거, 도보 배송 – 로컬푸드 유통의 실험들
그 질문에 답을 찾기 위해,
몇몇 로컬푸드 생산자와 함께
‘탄소를 최대한 덜 쓰는 유통 방식 실험’을 해보기로 했습니다.
가장 먼저 한 건,
도심 반경 10km 이내에 있는 소비자에게
전기차가 아닌 전기자전거나 도보로 꾸러미를 전달하는 방식이었어요.
동네 청년들이 직접 2~3kg 남짓한 채소 꾸러미를
자전거 바구니에 싣고 한 집씩 방문하는 방식이었죠.
하루 20가구까지만 가능했고,
배달 시간은 오래 걸렸지만
신기하게도 소비자 반응은 의외로 좋았어요.
“아파트 문 앞에서 채소가 숨 쉬는 느낌”,
“이게 진짜 내 식탁과 연결된 거리 같아요”
이런 피드백이 하나둘 도착하자
우린 속도보다 진정성이 더 중요할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물론, 도보나 자전거만으론 수익이 날 수 없다는 한계도 명확했어요.
그래서 일부 구간은 친환경 전기차를 이용한 공동 배송 시스템으로 전환했고,
공동주택 단위의 묶음 배송, 마을 거점 회수함 설치 같은
도시형 로지스틱스를 실험적으로 시도하게 되었죠.
3. 유통도 공유하는 시대 – 마을 거점과 비어있는 냉장고의 재발견
이번 실험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건
동네에 있는 놀고 있는 공간들이
얼마나 유통의 중요한 자원이 될 수 있는지 깨달았다는 점이에요.
한 번은 택배기사 출신의 지역 주민이
“우리 동네 마트 옆 냉장고는 평일 오전에 거의 비어 있어요”라고 제안했고,
그 말을 계기로
마을상점, 카페, 어린이집 후문 등에 임시 거점 냉장고를 설치하는 방식을 시도했습니다.
처음엔 걱정도 많았죠.
위생은 괜찮을까, 분실은 없을까?
그런데 놀랍게도
‘로컬푸드를 함께 돌본다’는 마음을 가진 마을 공간들은
오히려 더 정성껏 그 냉장고를 관리해줬습니다.
자연스럽게 수거 시간은 정해지고,
배송 기사 없이도 이웃이 이웃의 식재료를 챙겨주는 구조가 만들어졌죠.
그건 단순한 유통 방식의 변화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에 다시 ‘신뢰의 흐름’을 만든 경험이었습니다.
로컬푸드를 통해 유통을 바꾸겠다고 시작했지만,
결국 공동체 감각까지 회복하게 된 셈이었어요.
4. 숫자로 남지 않은 변화 – 제로에미션을 향한 작은 실천
실험을 마친 후,
우리는 얼마나 탄소를 줄였는지 계산해보려 했습니다.
하지만 금방 깨달았어요.
우리가 바꾼 건, 수치보단 방식이었다는 걸요.
매일 50개의 꾸러미가
배달 트럭 대신 자전거와 마을 거점 냉장고를 거쳐 전달됐다는 것.
그 꾸러미를 받은 사람 중 누군가는
“처음으로 식재료가 어떻게 오는지 생각해봤어요”라고 말했다는 것.
그건 어떤 수치보다 더 큰 전환이었습니다.
제로에미션은 결국 ‘완성’의 목표가 아니라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그 순간부터 이미 시작되는 과정이라는 걸
우리는 이 실험을 통해 느꼈어요.
속도와 편리함만을 좇아온 유통 구조 안에서
잠시라도 ‘이 방식이 맞는가’를 질문하고,
그 질문에 발로 답해본다는 것.
그게 이 실험의 진짜 의미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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