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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컬푸드

내가 먹는 채소의 얼굴: 생산자와의 만남이 준 변화

by recode-1 2025. 4. 13.

1. 익명성을 넘어서 – “마트가 채워주지 못한 한 가지”

늘 그렇듯, 마트 채소 코너에서 장을 보고 있었습니다.
어디선가 본 듯한 로고가 붙은 비닐봉지,
유통기한과 생산지, 그리고 바코드가 전부였죠.
그 순간 문득 든 생각—이 채소는 누가 길렀을까?
맛은 보장되고, 가격은 합리적이지만
생산자의 얼굴이 보이지 않는 식재료에 점점 의문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그 무렵 지인의 소개로 동네에서 열리는 작은 로컬푸드 직거래 장터에 갔고,
거기서 처음으로 **“이건 제가 키운 브로콜리예요”**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포장도 없이 테이블에 소박하게 놓인 채소들,
판매자의 손엔 흙이 묻어 있었고,
말 한마디에 진심이 느껴졌습니다.
마트에서는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그 ‘온기’가
제 식생활에 아주 큰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2. 생산자와의 첫 대화 – “먹는다는 건 연결된다는 것”

직거래 장터에서 채소를 고르다 말고
생산자분과 잠깐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올해는 봄이 예년보다 빨리 와서 상추가 일찍 컸다는 이야기,
비가 많이 와서 잎이 연하다는 이야기.
그 짧은 대화에서 저는 하나의 채소에도 계절과 노동, 이야기가 녹아 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그 이후부턴 음식을 만들 때마다 그 얼굴이 떠올랐어요.
‘이 브로콜리를 키운 분이 그러셨지, 너무 오래 익히면 향이 날아간다고.’
이런 생각이 스며들자,
단순히 배를 채우는 식사가 아니라
누군가와 연결된 시간이 되더라고요.

먹는다는 건 결국, 누군가의 손길과 삶을 나누는 일이라는 걸
처음 실감한 순간이었습니다.

 

3. 신뢰가 바꾼 소비 기준 – “이름이 있는 채소를 선택하게 되다”

이전까지 식재료를 고르는 기준은
‘신선한가, 싼가, 브랜드인가’였습니다.
하지만 직거래를 몇 번 경험한 뒤로는
이 채소를 누가 길렀는가’라는 기준이 하나 더 생겼어요.

그 사람의 얼굴을 알고, 농장의 사진을 보고,
수확한 날에 대해 들은 채소는
조금 비싸더라도 훨씬 믿음이 갔습니다.
유기농 인증 마크나 포장 디자인보다
한 사람의 성실함이 담긴 이름표 하나
저에겐 더 강력한 선택의 기준이 되었죠.

이건 단순히 ‘지역 농산물을 사자’는 차원이 아니라,
신뢰 기반의 소비문화로의 전환이었습니다.

내가 먹는 채소의 얼굴: 생산자와의 만남이 준 변화

4. 채소가 아이에게 준 교육 – “먹거리 감수성이 자란다”

어느 날 아이와 함께 장터에 가서
“이거는 ○○농부 아저씨가 기른 거야”라고 말해줬더니
아이의 반응이 달라졌습니다.
“그럼 남기면 안 되겠네!”
그 말 한마디에 저는 먹거리 교육의 본질은 결국 경험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느꼈어요.

마트에서 산 채소는 익숙하지만 관계가 없고,
직접 만난 농부가 기른 채소는 낯설지만 정이 생깁니다.
이건 어쩌면 음식을 대하는 태도, 생명에 대한 존중,
그리고 음식물 쓰레기를 줄이게 되는 자연스러운 흐름
으로 이어지는지도 몰라요.

아이와 함께 생산자의 이야기를 듣고,
조리 전 식재료에 대해 대화하는 시간이
작지만 깊은 감수성을 길러주는 교육의 순간이 되었습니다.

 

5. 얼굴이 있는 채소를 먹는다는 것 – “삶과 식탁이 연결되는 실천”

생산자를 알게 된 이후,
저는 점점 **‘식탁이 곧 지역 사회의 축소판’**처럼 느껴졌습니다.
어디서 길러졌는지, 누가 어떻게 기른 것인지,
이걸 안다는 건 단순한 정보가 아니라 내 삶의 영역이 넓어지는 일이더라고요.

그 채소가 자란 들판을 상상하고,
비 오는 날 일하던 농부의 수고를 떠올리면서 먹는 식사는
감사함이 밑바탕이 되는 식사였습니다.
그리고 그 식탁 위엔
포장보다 이름이, 가격보다 정성이 먼저였습니다.

내가 먹는 채소에 얼굴이 생긴 순간,
내 식탁에도 이야기가 생겼습니다.

그건 작지만 아주 의미 있는 변화였고,
아직도 이어지고 있는 실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