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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컬푸드

유럽 도시의 로컬푸드 정책, 한국이 배워야 할 점

by recode-1 2025. 4. 22.

1. 파리의 학교 급식 개혁 – 아이의 한 끼가 지역 농업을 바꾼다

파리는 201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공공급식을 통한 로컬푸드 소비 확대 정책을 시행해 왔습니다.
특히 초·중학교 급식의 경우, 전체 식재료의 50% 이상을
파리 인근 200km 이내에서 생산된 농산물로 구성하도록 하고 있어요.
이 기준은 단지 ‘지리적 거리’가 아니라,
탄소 발자국 최소화와 지역 농업의 자립도 향상을 동시에 고려한 결과입니다.

재미있는 건, 이 정책이 단지 행정기관의 지시로 이뤄진 것이 아니라
학부모, 급식 조리사, 교사들이 함께 참여하는 협의체를 통해 실현되었다는 점이에요.
학교마다 급식에 들어가는 식재료 선정 회의를 진행하고,
어린이들의 기호와 계절 농산물 사이에서 조율하며 ‘진짜 먹일 수 있는 로컬푸드’를 찾는 구조죠.

이 방식은 ‘의무’가 아니라 ‘함께 만드는 변화’로 다가오기 때문에
보호자들도 자연스럽게 지역 농산물 소비의 중요성을 체감하게 되고,
아이들에게도 로컬푸드에 대한 긍정적 경험을 어릴 때부터 쌓을 수 있도록 해줍니다.

유럽 도시의 로컬푸드 정책, 한국이 배워야 할 점

2. 베를린의 도시농업 연계 정책 – 텃밭은 도시 인프라다

독일 베를린은 도시 농업을 도시계획의 핵심에 넣은 대표 도시입니다.
도심 곳곳에 흩어진 ‘커뮤니티 가든’은 단순한 도시미관 조경을 넘어
먹거리 자립과 사회 통합의 도구로 활용되고 있어요.
예를 들어, 이민자 가정과 원주민이 함께 텃밭을 가꾸며
서로의 식문화와 작물 재배 방법을 공유하는 장면은
자연스럽게 다문화 이해와 공동체 복원으로 이어지는 교육 현장이 됩니다.

특히 인상적인 건, 베를린시가 ‘임시용 부지’를 시민 농장으로 지정해 무상 임대해주는 제도예요.
공사 전 유휴지가 생기면, 일정 기간 시민들이 텃밭으로 이용하고,
다시 시공이 시작되면 철수하는 방식인데,
그 사이 도시민들은 계절 채소를 직접 키우고 소비하면서
로컬푸드를 직접 경험하고, 소비와 생산을 연결하는 구조를 체감할 수 있어요.

한국에서도 텃밭은 있지만, 대부분 개인 체험 중심이에요.
베를린처럼 도시 시스템 안에 농업이 ‘기능’으로 포함된다면
로컬푸드는 훨씬 더 일상적이고, 정치적인 실천이 될 수 있을 겁니다.

 

3. 밀라노의 도시 식량 전략 – 도시가 먹거리를 직접 계획하다

이탈리아 밀라노는 유럽에서도 손꼽히는 ‘먹거리 도시’입니다.
단지 요리나 미식 문화 때문이 아니라,
도시 차원에서 먹거리 정책을 종합적으로 설계하고 실행하는 전략 도시이기 때문이죠.

2015년, 밀라노는 세계 엑스포를 계기로
‘밀라노 도시식량정책 조약(Milan Urban Food Policy Pact)’을 만들고,
도시 내 로컬푸드 유통, 식량 안보, 식품 폐기물 감축 등을 종합적으로 설계해 실현하고 있습니다.
이 조약에는 현재 200개 이상의 도시가 참여하고 있고,
한국 도시는 아직 포함된 곳이 많지 않다는 게 아쉬운 현실이죠.

특히 주목할 점은, 밀라노시가 도시 농산물 유통망, 식문화 교육, 식품 기업의 지속가능성 기준까지
총체적으로 설계하는 ‘먹거리 헌장’을 도입했다는 것이에요.
이건 단순한 정책이 아니라
“도시는 먹거리를 통해 지속가능한 삶을 설계할 수 있다”는 선언이기도 하죠.

 

4. 유럽 도시들의 공통점 – 정책보다 중요한 건 문화화된 실천

위에서 살펴본 유럽 도시들의 로컬푸드 정책은
단순히 행정이 잘해서 성공한 게 아닙니다.
정책의 실행력이 강력한 이유는,
그 사회에 이미 ‘로컬푸드는 좋은 것’이라는 인식이 공유돼 있다는 점이에요.
그리고 그 인식은 ‘한 번의 캠페인’이 아니라
일상에서 반복되는 교육, 경험, 생활 속 실천을 통해 쌓여온 것이죠.

예를 들어 파리의 한 시민은 “대형마트보다 근처 농산물 직판장에서 장보는 게 더 신뢰가 간다”고 말하고,
베를린의 시민들은 “내가 먹는 음식의 거리를 줄이는 것이 정치적 선택”이라고 말해요.
이건 단지 로컬푸드를 구매하는 행동을 넘어서
자신의 소비를 하나의 사회적 의사표현으로 인식하는 문화라는 뜻입니다.

한국도 제도는 꾸준히 발전하고 있어요.
하지만 아직 로컬푸드에 대한 인식이 소비자 사이에 ‘윤리적 선택’으로 자라나기엔
문화적 경험과 교육의 기반이 너무 부족한 상태입니다.

 

5. 한국이 배워야 할 점 – 일상 속에서 로컬푸드를 체감하게 만드는 설계

한국에도 로컬푸드 직매장, 꾸러미 서비스, 학교급식 로컬화 정책 등
다양한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지만,
많은 시민들이 여전히 “로컬푸드는 비싸다”, “구하기 어렵다”, “불편하다”고 느끼는 것이 현실이에요.
하지만 유럽의 사례를 보면,
정책은 결국 ‘문화적인 감각’을 만들어내는 방식으로 설계되어야 오래 간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예산 지원만으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로컬푸드를 먹는 일이 일상 속에서 감각적으로 즐겁고, 편하고, 의미 있어야
비로소 사회 전체가 바뀌기 시작해요.
유럽처럼 마을마다 작지만 꾸준한 로컬 마켓이 열리고,
아이들이 농장에서 놀며 채소를 따고,
동네 식당 메뉴판에 ‘오늘의 지역 식재료’가 표시되는 문화.
그런 작고 사소한 변화들이 쌓이면
우리는 기후 위기 시대에도 지속 가능한 도시를 만들 수 있을 겁니다.